한국 사회적경제의 현주소와 과제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센터 소장-

칼럼1810

이 글은 필자가 지난 7월 대구 사회적경제 통합박람회 발표한 <한국 사회적경제의 현주소와 과제>라는 보고서임을 밝힙니다.

1. 사회적경제, 우리의 오래된 미래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한국인의 삶에도 사회적경제가 있었다. 사회적기업육성법,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기 수백 년 전에도 우리 생활 속에는 호혜와 협동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전통적 협동조직인 계(契)의 시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촌 사람들은 농사일의 효율적 협업을 위해 농계와 두레를 조직했고, 자녀의 혼례를 치르거나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서민들은 혼상계(婚喪契)를 운영했다.

사회적경제는 사회의 원리로 경제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사상이며 또한 실천 활동이다. 사회의 원리란 함께 무리 짓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이, 상생을 위해서 지켜온 가치들―상대방에게 베풀기, 서로 돕고 협력하기, 약자를 보살피고 배려하기, 공정하게 분배하기 등―이다. 이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숙명과도 같은 ‘함께 살기’를 위해서 결코 저버릴 수 없었던 필연의 규칙들이다.

그래서 어떤 경제사학자의 말처럼 이 같은 사회의 원리는 애초부터 인간의 디엔에이(DNA) 속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일찍이 한국인의 역사에서 사회적경제의 모습들이 발견되는 것은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생 어딘가에 잠복해 있는 위험과 위기를 더불어 이겨내기 위해서, 혹은 함께 당면하고 있는 목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힘을 모으고 하잘 것 없는 자원이나마 각자 염출하였다.

이들이 어떤 문제 앞에서, 혹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십시일반의 부조에 나섰던 것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이가 오직 같은 처지의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법이나 제도도, 국가도, 시장도, 정치지도자도 그들의 문제에 관심 갖고 귀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스스로 단합해서 해결책을 궁리했다. 자조, 자립, 자발성의 원칙은 바로 이 같은 조건에서 유래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푼돈을 모아 자본을 마련했으므로 그것은 어떤 개인의 소유도 아닌 공동의 소유가 되는 게 마땅했다. 공동소유의 자본이니만큼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해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누군가가 돈을 많이 출자했다는 이유로 권력을 과점하려 들 때 그것을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이렇듯 오늘날 사회적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운영의 핵심원리들은 매우 자연스럽고 자연발생적인 방식들이다. 특별한 누군가가 어렵사리 고안해서 남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해준 무엇이 아니었다. 차라리 민중들의 집단지성이라고 하는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하여 20세기가 저물 때까지 한국사회에는 미처 ‘사회적경제’라는 이름표는 달지 않았으되, 사회적경제의 원리와 방식으로 추동되는 무수한 시도들이 있었다. 자연재해를 딛고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경제사업을 일으키려니 자금이 필요했고 그런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신용협동조합(신협)을 조직했다.

농업용품과 생필품의 저렴한 구매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소비조합을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 생산자와의 상생이라는 가치와 만나 오늘날의 소비자생협으로 발전했다.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서울 낙골의 산동네 주민들은 1976년,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전국화되기 전까지 이 조합은 12년 간 가난한 서민들의 건강을 지켰다.

재개발사업으로 살 곳을 잃게 된 서울 양평동의 철거민들은 경기도 시흥군으로 집단 이주해서 「복음자리」라는 공동체 마을을 일구었다. 이들은 수년에 걸쳐 건축비와 땅값을 주택조합에 상환하고 자기 소유의 집 한 채씩을 마련했다.

서울 하월곡동의 일용건축노동자들은 불규칙한 노동과 저임금에 지친 나머지「건축일꾼 두레」라는 생산공동체를 결성했다. 일하는 이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일종의 노동자소유기업이었다. 그게 1990년의 일이다.

한결같이 이런 조직들의 근거가 되는 법이나 제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이런 조직을 정책적으로 육성 ․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법이나 지원 제도가 없다는 사실은 하등 걸림돌이 되지않았다. 이들에게는 눈앞의 문제, 충족해야 할 필요가 무엇보다 절실했기 때문이고, 자신들 말고는 기댈 곳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 사회적경제의 본성이 그러하듯이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낳은것 역시, 정부의 법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와 갈망이었다. 인간답게살려면 꼭 필요했던 것, 삶이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간절히 요구됐던 것 —현실이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돕고, 없던 길을 새로 만들어나갔다.

2. 왜 사회적경제인가

왜 한국 정부는 2000년대에 들어 새삼 사회적경제에 눈을 돌리고 지원하는법이며 제도를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오로지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수출증대 전략에만 매달려왔다.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이 전략이 주효한 듯했으나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경제성장률이 꺾이면서 저성장의 시대가 찾아왔고 장기실업과 고용불안이 일상화되었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겹치면서 국가 재정의 불균형은 더 심해졌다.

성장 전략의 낙수효과는 자취를 감추었고 처음에는 일시적 현상처럼 보였던 실업과 계층 양극화가 어느새 우리 사회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만인이 정치적으로는 점점 더 평등해지는데 날이 갈수록 경제적으로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있었다.

또한 고도성장 시대의 부작용들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각종 공해와 그로인한 환경오염,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 지역공동체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상업화, 자살률의 증가 등등은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설상가상의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 단절이 심각했다. 예전에 혈연이나 지연으로 유지되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각자도생, 개별화의 경향이 만연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들려오던 무연사회(無緣社會)에 대한 고민 —연고 없는 사람들의 고독사 문제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코앞에 다가왔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의 등장은 결국 시장자본주의와 성장주의 발전전략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였다. 실은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민중들이 시도했던 수많은 사회적경제의 원형(原形)들도 성장주의 정책이 가하는 위협에 대한 나름의 대응이자 자기방어의 몸부림이었다.

점차 저성장과 저고용, 빈부격차와 고령화는 더 이상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박정희 식 근대화 전략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리하여 유럽 국가들이 실업과 사회적 배제, 커뮤니티의 쇠락 등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끝에 사회적경제 부흥정책이라는 칼을 빼들었듯이, 한국 정부 역시 앞서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 희망을 사회적경제에서 구하기 시작했다. 제도화의 시초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자활공동체(현재의 지활기업)의 육성을 명시한 것이었다.

이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의 관련법이 제정되고 마을기업과 농어촌공동체 회사지원정책이 확대되면서, 성격이 비슷비슷한 모두를 묶어서 ‘사회적경제’로통칭하는 관습이 생겼다. 유럽에서 사용하던 용어(Social Economy)를 들여와서 부처별로 관리하던 조직유형들을 한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강조했거니와, 사회적경제는 단순히 자활기업,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및 마을기업의 합집합이 아니다. 정부 제도가 규정한 이들 조직유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넓은 범주를 아우르는 것이다.

사회적경제는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목표하고 사회적경제의 핵심원리를 따르는 모든 자발적 결사체를 일컫는 개념이어야 한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교환 ․ 분배 ․ 소비하는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실업과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는가? 정부 통계상 사회적경제기업의 종사자가 모두 36만여 명이라고 하니 그 수만큼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우리나라의 실업률이 내려갔다거나 실업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업이나 빈곤의 규모는 거시적 경제 ․ 사회 구조의 변동에의해서, 복합적 요인들의 작용으로 결정되므로, 작은 규모로 아주 천천히 생성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일자리가 그 모든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사회적경제를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 가운데도 “사회적경제 조직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간접적인 것이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편적 정책수단은 아니”(1)라거나 “사회적경제가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의 임무가 실업이나 그밖의 시장경제의 실패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2)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1) Westlund, Hans (2003), “Social Economy and Employment—he Case of Sweden”, Review ofSocial Economy LXI(2), p. 180.

(2) Laville, Jean-Louis (2003), “A New European Socioeconomic Perspective”, Review of Social Economy LXI(3), p. 389.

하지만 위의 주장이 사회적경제 정책의 가치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회적경제 정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대안적 이념인 사회적경제를 단지 고용정책의 수단으로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여기서 하나의 국가 정책이 어떤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고 목표한다는 것(담론의 차원)과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효능을 갖는다는 것(과학적 사실의 차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결정자가 이 두 가지 차원을 혼동하게 되면 사회적경제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간과한 채,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는지, 소득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만으로 모든 걸 평가함으로써 사회적경제를 수단화해버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를 경쟁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공생과 호혜 및 협동의 가치체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상이고, 동시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활동이다. 달리 말하면,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두는 살림살이의 경제로 나아가겠다는 가치 지향이다.

그런한에서 실업, 빈곤 및 불평등의 해소는 사회적경제가 신자유주의 너머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정책들과 함께 부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한 결과 영역일 뿐이다. 아마도 공생의 관계 회복, 포용과 배려의 정신, 그리고 생활속의 민주주의가 살아나지 않는 속에서는 설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한들 현재의 우리 삶이 더 나아진다고 장담하기 어려우리라.

3. 사회적경제의 성과와 문제점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한국에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당사자인 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적경제기업과 그들 간 네트워크의 숫자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수준으로 증가했다. 필요를 가진 당사자들이 자립적으로 해결하고자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움직임이 그만큼 확산됐다는 증좌다.

또한 경제활동의 주체도 다양해졌다. 자활공동체 시절에는 주로 저소득 취약계층으로 한정돼 있던 참여자들이 이제는 일반기업의 퇴직자나 청년, 주부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무엇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기업의 소유자 내지 경영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단지 일거리를 찾아 사회적경제기업에 발을 들여놓았던 참여자들 가운데는 역량이 자라서 조직의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민간 네트워크들이 조직되면서 지역 단위에서 민과 관이 함께 협의하는 회의체도 상설화되었다. 당사자 조직들의 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한 곳에서는 지자체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민관거버넌스 구성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시민들의 인식도 변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경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작게나마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과 공감대가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이 조금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사회복지체계가 사회적경제를 통해서 혁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들도 생겼다.

이런 변화들이 나타난 데는 법을 제정하고 지원제도를 운영해온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국민 인식의 변화도 전국으로 뻗은 제도화의 경로를 타고좀 더 수월하게 일어난 면이 있다. 사회적경제가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로 다루어지면서 관련 정책들이 국민생활에 미친 파급 효과는 제도화 이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광범했다.

물론 사회적경제기업을 꾸려가는 당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 같은 성과를 낳은 1차 원동력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절실한 필요를 해결하려는본인들의 자구적(自救的) 열정이야말로 자동차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의 힘과 같기 때문이다. 이상이 한국의 사회적경제 부문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라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나 어려움은 없을까

첫째, 민간 당사자 조직들의 주체성이 약한 반면, 정부의 주도성이 너무 강하다는 문제가 있다. 앞에서 사회적경제의 저변이 단시간 내에 확대될 수 있었던 데는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정부의 공이 크다고 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정부가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자주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가능케 한다.

여기서‘당사자 조직의 주체성이 약하다’는 문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여러 가지 모습의 현상들로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다.

ⅰ) 당사자 조직들이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조건 없이 따른다. 사회적경제의 기본정신과 원칙에 입각해서 정부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정부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를 가리키는데, 대개는 민관협의기구의 감투와 돈(지원 예산)이라는 권력을 가진 정부관계자와 갈등을 빚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이다.

ⅱ) 당사자 조직들의 연합체 차원에서 필요한 법제와 정책을 선제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해서 먼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정부가 발표한 정책이원만히 실행되도록 협조하는 데 급급하다.

ⅲ) 개별 당사자 조직들은 시장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혁신적으로 사고하며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기보다는 정부 보조금 등에 의지해서 근근이 꾸려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경제 차원의 큰 활로를 모색하기보다는 자기 조직의 경영에 매몰되어 각개약진 하는 성향을 보인다.

ⅳ) 사회적 가치, 창립 당시 설정했던 미션과 목적 등에 비추어 자기 기업이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지 성찰하지 않고 재무적 성과를 내는 데만 골몰한다. 사회적경제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채 비즈니스 조직으로서 생존하는 데만 힘쓰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당사자 조직의 처지가 얼마나 허약한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처음 발의된 이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 당사자 조직들은 ‘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한 번도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제대로 고민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기본법의 제정을 일찌감치 기정사실화 해놓고 있었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안(案)에서 혹시 빠진 내용이 없는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에 뒤늦게 물어왔다. 결국 기본법 제정에 대해 한 번도 ‘왜’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연대회의는 정치인들의 일정에 맞춰 ‘어떻게’를 채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연대회의 임원들 입장에서는 ‘법 우선주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달리 대응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법 제정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몇몇 연구자들이 ‘부처 간 칸막이 행정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통합지원관리를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이미 제공해놓고 있던 터였다. 당사자끼리의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는 졸속함을 문제 삼거나 ‘법이 제정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따지던 소수의 사람들은 점차 입을 다물었다. 좋은 취지를 일부러 외면한 채 반대를 위해 반대하는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현장의 사회적경제기업 종사자들 사이에는 ‘뭔지 몰라도 법이 제정되면 하나라도 좋아지는 게 있겠지’하는 기대와 ‘법이 만들어져도 우리에게 달라질 것은 하나 없다”는 냉소가 교차했다. 그래서 기본법 제정은 정치권력에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 ‘절실한 필요’였지만, 현장 조직들은 아무도 그것이 ‘우리를 위한, 우리의 법’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제출된 법안은 여전히 국회의 정치판도 변화에 운명을 맡긴 채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처음의 입법 취지조차 무망한 채로.이것을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법의 제정 과정과 비교해보면 주체성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사회운동가들은 1970년대 말부터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책임지는 협동조합의 새로운 법구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확대된 공익성’을 담기 위해서는 다중이해관계자 구조의 새로운 협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실제로 전국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적협동조합의 수가 1985년 전국 집회 때는 550개에 이르렀고, 이런 추세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에 앞서 사회적협동조합을 위한 제도들을 마련했다. 그리고 당사자 조직들의 줄기찬 요구에 의해서 정식으로 사회적협동조합법이 제정된 것은 1991년이었다.

정부와 당사자 조직 모두가 우리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다르게 행동했다.

그야말로 밑에서부터 위로, 철저히 상향식의 경로를 따랐다. 한 가지 서글픈 것은 이런 차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일부 논자들이 ‘한국적 특수성’을 거론하면서 하향식 법제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족: 혹여라도 이상의 논의가 기왕에 발의된 기본법안조차 통과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이 이러하므로 (중앙 또는 지방) 정부와 민간의 당사자 조직이 대등한 위치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관거버넌스를 이루지 못한다는 두 번째 문제가 대두된다. 형식적으로는 전국에 수십 개의 사회적경제 민관협의기구가 존재하지만 양자 간에 실질적 협의가 이루어지는 곳은 잘 찾아볼 수 없다. 요식행위처럼 이따금씩 회의가 개최되고, 그나마도 정부가 이미 확정한 계획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거나 결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의 회의가 대부분이다.

정부기관이 당사자 조직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실행의 책임을 분담하는 식의 민관파트너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기관 공무원들의 태도의 기저에는 민간부문 관계자를 함께 일을 도모하는 동반자라기보다 자신들이 주관하는 업무를 보조하는 자, 자신들이 기획한것을 실행하는 자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사회적경제 담당 공무원들에게서는, 예외적 일부를 제외하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사회적경제를 기존 정책의 도구로만 여기는 정부기관의 협소한 관점은 그들로 하여금 늘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들은 보다 민주적인 미래 사회를 향한 큰 그림 속에서의 종합적 평가보다는 당장의 가시적 성과, 전시효과에만 관심 있어 한다. 자연히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자기 성찰과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당사자 조직들의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가 배분하는 자원을 쫓는 데 열심인 반면, 타성을 벗기 위한 자기 성찰에는 소홀하다. 사회적경제의 핵심요소인 자발성과 자주성이 약한 조직들이 자주 발견되고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위기의식도 옅은 편이다. 제도화되기 이전에 있었던 성향―스스로를 돕고자 전심전력하는 태도의 중요성은 퇴색하는 분위기이고, 사회적경제 1세대 중에는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자기 조직에만 몰입하는 경향은 연대와 협동을 어렵게 한다. 실제로 사회적경제 조직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이 잘 안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기조직 이기주의가 그 하나라면, 조직 간의 다름을 존중하거나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 또한 다른 이유다. 연대를 위한 그간의 모임들이 시간만 축내며 별 소득 없이 끝났다는 부정적인 기억도 협동의 기운을 떨어뜨리는 세 번째 이유다. 그래서 협동과 연대를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이 현실에서는 서로 힘과 뜻을 모으는 데 매우 소극적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의 발전 정도와 정책적 환경에서도 지역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지방이 침체되는 것을 막아야 할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또 한 번 자원의 접근성과 기회의 불균형으로 인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생태계에서도 수도권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4. 오래된 미래를 향한 우리의 과제

1) 정부는

사회적경제가 단지 일자리 정책의 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복원되는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가 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래사회에 대한 발전전략으로서 사회적경제의 장기적 비전과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당사자 조직이 대등한 동반자로서 실질적 의미의 협치가 일어날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겉치레에 불과한, 그리고 민간 참여자가 정부관계자의 보조자 내지 협력자에 머무는 작금의 구조는 개혁돼야 마땅하다. 만약 (청와대부터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경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단위에서 민간의 의견과 실천의지가 충분히 반영된다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이 풀리고 진척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정부 공무원들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진다면 역시 많은 어려움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에 대한 효과적인 사회적경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타율적이고 형식적인 집체교육은 교육참여자의 인식 변화를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생각과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속적이고 심도 깊은 교육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사회적경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 제도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순환근무제에 따른 잦은 인사이동으로 사회적경제 담당자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자체와 사회적경제기업들 간의 관계가 수년 씩 제자리에서 맴도는 경우들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관 제도나 개방직 공무원 채용제도의 적용을 고려해봄직하다.

2) 민간의 당사자 조직은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서 힘이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서 오는 권위와 조직의 세력이란 차원을 모두 포함한다. 오늘날 사회적경제의 기본정신과 철학을 잊고 관성에 젖어있는 조직들이 적잖게 생겨난다. 협동과 연대의 원칙은 아랑곳없이 영리기업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회적경제의 근본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과 자정(自淨)의 움직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조직은 도덕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고 결국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성찰과 자정의 운동은 누군가가 다중을 향해 잣대를 들이대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에 공감하는 당사자 그룹이 자발적으로 조용히 실천해나감으로써 눈덩이 커지듯 서서히 확산되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을 구체적인 실천지침―가령,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5가지―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공유하며,

이를 실천하는 조직들은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의 네트워크로 모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의 실천지침들 가운데 하나로서 자기 조직의 사회적 성과를 주기적으로 평가해서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포함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나의 평가도구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용해 자기 조직의 미션과 목적 등에 비추어 어떤 내용의 사회적 가치를 얼마만큼 산출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진단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자기 의무화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정부의 실천 과제는 민간이 아무리 말로 설득하고 촉구해도 그것만으로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 없다. 당사자 조직들이 실제로 힘을 갖고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협력과 연대를 실천하는 관행을 만들어내야 한다.

첫째, 지역에서 유의미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모델 혹은 사례를 사회적경제 조직들끼리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확산해야 한다.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분석하는 워크숍은 연대의 당위성 때문에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돼온 종래의 회의체들에 비해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연대는 사업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정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사업을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키워야 한다. 이러한 사업연합체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종업체끼리 모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큰 사업(예컨대, 공공재정 사업)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업종의 사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도시재생과 같은 인접한 영역과의 협력사업 또한 적극 모색하고 개발함으로써 사업 영역을 확장해가야 한다. 사업을 매개로 한 네트워크 역시 참여 기업들이 연대의 효용을 직접 체감하게 돼있으므로 비교적 안정적인 유지가가능할 것이다.

셋째, 이상의 연대는 조직유형 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기업들끼리, 혹은 협동조합들끼리의 연대가 아니라, 조직유형이나 소관부처에 상관없이, 오로지 사업적 필요성에 의해서 결합되는 관계여야 한다. 물론, 같은 조직유형들의 협의체도 필요하긴 하지만, 협력의 대상을 사회적경제 조직 전체로 열어놓을 때 비즈니스 측면의 실질적 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지역에 사회적 금융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앞으로 민간에서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계획 중인 전국 차원의 금융 전달체계만 바라보지 말고, 기존의 금융기관들 가운데 각 지역에서 사회적 금융의 중심 노릇을 할 곳을 찾아서 지역의 독자적인 자조기금 체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중간지원기관은

자기 역할을 재정립하고 지원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중간지원기관들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업무를 이것저것 다 하고 있지만, 현장 조직의 실질적 필요와 요구에 얼마만큼 부응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는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중간지원기관의 기능 중에는 행정기관이 해도 좋음 직한 단순 업무부터 지자체 주관 행사의 대행 내지 보조에 이르기까지 당사자 조직들에 대한 실질적도움과는 거리가 있는 잡다한 일들이 포함돼 있다. 컨설팅이나 네트워크 지원같이 정작 사회적경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을 하기에는 구성원들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칠 뿐 아니라 많은 업무량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역할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당사자 조직들의 사업 네트워크 조직화를 지원하는 일이다. 사업 연합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은 당사자 조직들만의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업에관련된 정보와 아이디어를 찾고 개발하는 데는 시간과 전문지식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흩어져 있는 당사자 조직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데도 신뢰의 관계를 구축해가는 지속적 접촉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일터로서 중간지원기관이 다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5. 맺으면서

외국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이름을 수입해오기 전부터 우리에게는 그것의 본질을 실행해온 전통이 있다. 우리는 그 전통이 지녔던 건강함을 거울삼아 현재의 우리 모습을 비쳐보아야 한다. 그 건강함의 문화 속에는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침이 들어있다.

사회적경제 당사자 조직은 그간 소홀했던 협동과 연대의 원칙을 되살려내야 한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작은 협동들을 실천하면서 큰 연대의 경험을 쌓아올려야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민간부문의 연합체는 정부의 피동적 대화상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요구하며 관리하고 배분하는 책임 있는 실체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원주에서는 이런 제안이 들린다; 과거 시대에 혈연, 지연, 학연이 기능하던 자리에 이제는 협연(協緣)―협동으로 맺어진 인연―을 채워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불평등과 차별의 칼바람이 자꾸 거세지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은 사람 관계의 끈을 열심히 이어 서 민주주의의 집을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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