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이기는 즐거운 나날, 사회적경제의 연대의 길로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

안인숙칼럼

후텁지근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92년 여름,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7월 달에 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 밤이면 밤마다 억수같이 비가 오고, 해가 뜨면 쨍쨍한 날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아마도 그해 장마가 유별났던 것이 아니라, 큰 아이가 태어난 해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쾌적한 날씨는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생활에 곤란이 있을 때는 쾌청한 날도 괴롭기만 하고, 기쁜 일이 가득할 때는 살을 에는 추위도 숨막히는 더위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겨울, 한 겨울 내내 사람들은 광화문 일대를 떠나지 않았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은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내기까지 4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막힌 숨을 토해내는 그 광장에서, 누군들 추위에 아랑곳 했을까.

자식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신은 이른 은퇴를 고민하면서, 희망의 내일을 찾아 나섰던 사람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냈다. 적폐를 청산할 것이며, 사람이 먼저라고 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앞으로의 세상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한다. 모두 아름다운 말이고, 또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규범이기도 하다.

이제껏 우리는 파이를 키워야 나눠 먹을 것이 많으니, 우선 파이부터 키우자고 죽자사자 달려왔다.
​그랬더니 키워 놓은 파이를 어느 놈이 독식하고 있었다. 새 정부는 부풀어 오른 파이를 고르게 분배하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20년은 노력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경제를 확대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파이의 크기보다 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람이 먼저라고 한다면 파이는 나중이 되어야 한다.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권력관계가 눈에 잘 보인다. 성별 차이가 권력이 되는 구조가 보이면 장애/비장애, 서울/지방, 서울대/지잡대, 어른/아이, 이성애/동성애 등의 온갖 위계 구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사회적경제 역시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경제와 사회를 인식하게 만든다. 내가 아는 사회적경제의 관점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아주는 따뜻한 시선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고(공동체),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달리며(자립), 대화를 통해 욕구를 조절하고(민주적 의사결정), 위로하고 위로받고(연대), 겨루고 분발하는 친구 사이에서(교육과 훈련) 하나의 인격이 된다. 꽃으로 태어나 꽃이 되는 길을 갈 때,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지는 몇 번째로 중요할까? 사람이 먼저라고 할 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련의 조건은 매우 ‘사회적’인 것이다. 사람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든 생활(경제)은 ‘사회적’인 것이다.

행복중심생협을 떠나, 이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2년간의 활동 계획을 세우고 있다.
거의 매일 사회적경제 분야의 인물을 만나고 있다. 그들의 인생 속에 한국의 사회적경제의 역사가 담겨 있고, 미래도 엿보인다. 책으로 치면, 오래되어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묵직한 책도 있고, 아직은 쓰여 질 칸이 더 많은 새책도 있다. 행간을 읽기 어려운 책도 있고, 수줍어 말 못하고 행동하는 언니책도 있다. 당분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 속에서 더위를 잊게 될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새 정부의 사회혁신의 노력이 사회적경제의 제도화라는 거름만 무성히 뿌리는 데서 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비바람 불면 금방 쓰러진다. 우리 역시, 연대와 협동이 체질화된 진정한 사회적경제 활동가인지 그 진면목이 드러날 때에 이르렀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자유주의적 규범을 넘어, 사회적경제의 규범을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는 것, 이것을 향해 자신을 성찰하고 연대의 큰 길을 만들어 가는 일, 앞으로 이것만 하자. 나에게 되뇌고 누구에게든 당부 하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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