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호 칼럼]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경제

며칠 후면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다.

​이번 19대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 즉시 시작된다고 하니 당선이 확정되는 5월 10일이 출발점이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지난 4월 24일,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사회적경제 정책을 제안하고 협약식을 가졌다.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경제위원회> 설치, 내실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조속한 제정, 사회적경제 활성화 ․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의 실현』이라는 큰 틀의 요구에 대해서 문재인, 유승민, 심상정 후보 측이 모두 추진을 약속한 반면, 안철수 ․ 홍준표 후보의 정책 관계자들은 아예 참석을 하지 않았다.

연대회의 측의 제안 내용은 정치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이 처음 거론되던 2015년부터 나온 얘기여서 새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마치 우리나라 전체 사회적경제 진영의 합의사항처럼 인식되고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2년 전에 당시의 여야가 제정하기로 한번 합의했던 터라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나면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법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쉽게 풀리지 않을 난제들이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가령, 제2조에 들어갈 사회적경제의 정의(定義)에 어떤 단체(혹은 조직)들을 포함시킬 것인가에서부터 논란의 여지가 많다.

2년 전 제출된 여야 양당의 법안에는 모두, 농업협동조합(농협)이나 수산업협동조합(수협)같이 1961~62년 군사정권에 의해 하향식 경로로 처음 만들어진 이른바 관제협동조합들이 들어 있다.

​이런 협동조합들의 성장과정과 조직문화는 민주성 등 사회적경제 원리와 동떨어져서 이름만 협동조합일 뿐 결코 그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한편에 있거니와, 더욱 가관인 것은 오늘날의 농협중앙회가 사회적경제 조직의 하나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경제의 범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조직들을 정치인들이 법을 통해서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형국이다. 자발성과 자율성이 사회적경제 핵심원리의 하나임을 상기한다면 지독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타율적 범주화를 추진하던 이들 가운데는, ‘농협을 강제로 사회적경제 범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농협이 지닌 거대한 자금의 일부를 사회적경제발전기금으로 토해내게 하기 위함’이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법과 제도의 의지(意志)에 달려있다고 믿는, 정책공학적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회적경제의 핵심가치를 무시한 이런 사고방식이 제대로 된 육성정책을 내올 리 만무하다. 이해관계자들의 합의가 쉽지 않은 문제들이 널려 있는데다, 근시안적 법제 만능주의가 팽배한 탓에, 연대회의가 기대하는 “내실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낙관하기가 참 어렵다.

​“내실 있는” 법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조직 당사자들의 의견과, 합의를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존중되어야 하거니와, 이것이 충분히 지켜지기 위해서는 숙려와 조정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조속한” 제정과는 서로 모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현장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발전 정책을 수립하고 싶다면 사회적경제의 철학과 원리에 충실한 방식으로 지원제도를 설계할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연대회의가 대통령 후보들에게 준 정책 제안서에서 “시민이 주체가 되는 경제가 곧 사회적경제”라고 선언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중심이고 주체가 되는 경제라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자발적 힘과 지혜가 난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임을 믿는 것이고, 진정한 지원정책은 주체들이 자신들 내면의 힘을 끄집어내어 조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인 것이다. 이 같은 사람의 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제도를 통해 물질적 자원을 들이붓기만 하면 성공사례들이 저절로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하는 정책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연대회의의 ‘시민 주체’ 선언이 정부로부터의 더 많은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기 치장용 수사(修辭)가 아니라, 발전전략의 중심에 사람을 세우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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